
처음 탁구를 배우러 온 회원분들이 동네 마트에서 산 일체형 라켓을 들고 오시면 저는 항상 난감합니다. 좋은 의도로 미리 준비하신 건데, 솔직히 그 라켓으로는 제대로 된 탁구를 배우기 어렵거든요. 러버가 닳아도 교체할 수 없고, 반발력도 턱없이 부족해서 어깨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나중에 결국 다시 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입문자분들에게 블레이드와 러버를 따로 구매하시라고 항상 말씀드립니다. 다만 어떤 블레이드를 추천해야 할지는 정말 조심스러운 부분입니다.
쉐이크핸드 그립으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
제가 선수 생활을 할 때만 해도 주변에 펜홀더 그립을 사용하는 선수는 거의 없었습니다. 반면 아버지 세대 분들은 대부분 펜홀더를 쓰셨죠. 저도 처음 아버지께 받은 라켓이 펜홀더였는데, 지금 아버지도 쉐이크핸드로 바꾸셨습니다. 예전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러버를 한 면만 붙여 쓸 수 있는 펜홀더가 많았던 게 아닐까 혼자 추측해봤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현재 탁구장에 오시는 어르신들 중에도 펜홀더를 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구력이 오래되지 않은 분들께는 쉐이크핸드로 바꾸시길 권해드리는데, 특히 입문자분들에게는 무조건 쉐이크핸드 그립을 추천합니다. 쉐이크핸드는 양면 러버를 활용할 수 있어 포핸드와 백핸드 전환이 자연스럽고, 현대 탁구의 주류 그립이기 때문입니다. 국제탁구연맹(ITTF)에서 인정하는 공식 경기에서도 쉐이크핸드 선수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출처: 국제탁구연맹).
블레이드 구조와 신소재의 중요성
탁구 블레이드는 ITTF 규정상 85% 이상이 목재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ITTF란 국제탁구연맹(International Table Tennis Federation)을 의미하며, 전 세계 탁구 규정과 장비 기준을 관리하는 공식 기구입니다. 블레이드는 목재 비율에 따라 단판, 순수합판, 신소재합판으로 나뉘는데, 현재 쉐이크핸드에서는 신소재합판이 대세입니다.
신소재합판은 크게 아우터(Outer)와 이너(Inner) 구조로 구분됩니다. 아우터는 표층과 중간층 사이에 신소재가 배치되어 신소재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고, 이너는 중간층과 중심층 사이에 신소재가 들어가 특성이 어느 정도 절제됩니다. 대표적인 신소재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가볍고 단단하며 반발력을 높이는 성질의 카본(Carbon), 부드러운 타구감과 불필요한 진동을 완화시켜주는 아릴레이트(Arylate), 아릴레이트보다 경도가 높아 직접적인 타구감 제공하는 자일론(Zylon)이 있습니다.
이런 신소재들은 목재 특유의 개체 편차를 줄이고, 스위트 스팟(Sweet Spot)을 넓혀줍니다. 스위트 스팟이란 공을 칠 때 반발력이 최대로 나오고 타구감이 가장 좋은 지점을 의미합니다. 제가 선수 시절 사용했던 블레이드도 신소재합판이었는데, 순수 목재 블레이드보다 확실히 일정한 감각을 유지하기 쉬웠습니다.
비스카리아를 추천하는 네 가지 이유
생활체육 현장에서 지도하다 보니 동호인분들이 정말 많이 사용하는 블레이드가 바로 버터플라이 비스카리아입니다. 저는 수비형이라 블레이드나 러버가 둘 다 저렴한 편이었는데, 비스카리아는 공격형 블레이드 중에서 가격 부담이 없다면 가장 추천하기 적당한 제품입니다.
첫째, 비스카리아는 입문이자 종결이 될 수 있는 블레이드입니다. 적당한 반발력과 절제된 울림을 가지고 있어 입문자가 사용하기에도 좋고, 실력이 늘어도 계속 쓸 수 있습니다. 1993년 출시 이후 30년간 전 세계 선수들과 동호인들에게 검증받은 제품이기도 합니다.
둘째, 탁구를 계속 친다면 언젠가는 사용하게 될 블레이드입니다. 탁구는 치는 것도 재미있지만 용품 조합의 재미도 상당합니다. 이른바 '용품병'이라 불리는 과정에서 가장 대중적인 비스카리아를 거치지 않고 지나갈 수 없기에, 처음부터 비스카리아로 시작해 레퍼런스 블레이드로 삼는 게 효율적입니다.
셋째, 단종될 위험이 없습니다. 많은 탁구 블레이드가 선수 이름을 딴 네이밍 마케팅을 하는데, 선수와 제조사 계약이 끝나면 단종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스카리아는 선수 네이밍이 아니고 이미 대중적 인기를 확보해 제품 공급이 안정적입니다.
넷째, 용품으로 딴지 걸릴 일이 없습니다. 저는 일체형 라켓 외에는 용품에 대해 지적받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지만, 간혹 그런 일이 있다고 합니다. 적어도 블레이드를 비스카리아로 선택하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립 선택이 가장 중요합니다
블레이드를 선택할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그립입니다. 블레이드 그립은 주로 FL(Flared, 플레어드)과 ST(Straight, 스트레이트)로 나뉩니다. FL은 나팔 모양으로 손잡이 끝이 넓어지고, ST는 일직선 형태입니다. 간혹 FL은 손이 작은 여성용, ST는 손이 큰 남성용이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는 FL이든 ST든 제품마다 모양이 천차만별이라 사람마다 다릅니다.
좋은 그립이란 손에 힘을 빼고 쥐었을 때 손안 공간이 너무 남지도, 너무 꽉 차지도 않는 상태입니다. 또한 포핸드와 백핸드를 전환할 때 그립을 많이 고쳐 잡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선수 시절에도 같은 블레이드라면 FL이든 ST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사용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제 손에 잘 맞는 그립을 먼저 찾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스카리아에는 동일 구조 블레이드가 많습니다. 티모볼 ALC, 장지커 ALC, 판젠동 ALC 등 선수 네이밍에 따라 그립이 모두 다르지만 성능은 동일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선택은 이 중에서 그립이 손에 맞으면서 가장 저렴한 제품을 고르는 것입니다. 가까운 오프라인 탁구 매장에서 직접 잡아보고 구매하는 방법을 가장 추천드립니다.
블레이드 무게는 용품사에서 제시하는 평균 중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계절에 따라 습도가 달라 목재 블레이드는 구매 시기에 따라 무게 편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블레이드 수명은 물리적 파손이 없다면 반영구적이지만, 습기에 민감해 여러 계절을 거치거나 손에 땀이 많으면 짧게는 반년, 보통 2년 정도면 감각이 달라집니다.
입문자분들께는 가격 부담이 있다면 엑시옴 36.5 ALX나 스트라디바리오스도 좋은 대안입니다. 엑시옴은 한국 브랜드로 오랜 역사를 가진 제조사이며, 비스카리아를 벤치마킹한 제품들이라 성능도 비슷하면서 가격이 저렴합니다. 제가 입문자분들께 블레이드와 러버를 추천할 때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 바로 가격입니다. 계속 치실지 확실하지 않은 분들께 너무 비싼 제품을 권했다가 나중에 그만두시면 돈을 버리게 될까 봐 신경 쓰이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가성비 좋은 제품으로 시작하시고, 탁구가 재미있어 계속 치시게 되면 그때 비스카리아 같은 제품으로 업그레이드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무조건 비스카리아를 구매하라는 건 아닙니다. 그립이 손에 맞지 않으면 절대 사시면 안 됩니다. 그립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블레이드라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으니까요. 처음 라켓을 구매하실 때는 다음에 다룰 러버도 함께 구매하셔서 매장에서 부착 서비스를 받으시길 권해드립니다. 제대로 된 탁구를 배우고 싶으시다면, 일체형 라켓은 절대 피하시고 블레이드와 러버를 따로 구매하는 것부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