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구 선수로 활동하던 제 초등학교 시절, TV에서 유승민 선수가 아테네 올림픽 시상대 위에서 태극기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탁구에서 넘을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 장면은 단순히 스포츠의 승리를 넘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 한국 탁구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통해 들어와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수많은 드라마를 써왔고, 그 과정에서 세계 무대를 빛낸 영웅들이 탄생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한국 탁구의 뿌리
한국 탁구의 공식적인 시작을 언제로 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대한탁구협회는 1924년 경성일보가 주최한 '제1회 전조선 핑퐁 경기대회'를 효시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 효시란 어떤 일이나 사물이 처음 시작된 단계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대회는 일본인 신문사가 주최했고 참가자 대부분이 일본인이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 1928년 서울 YMCA가 주최한 '제1회 전조선 탁구 선수권대회'를 진짜 시작점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대회는 우리 민족이 직접 주도했고, 민족운동과 계몽운동의 성격을 모두 지닌 구국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후자의 견해에 더 공감합니다. 아무리 조선 땅에서 열렸다 해도 일본인이 주축이 된 대회를 우리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 1936년 고려탁구연맹이 일본식 연식 탁구 대신 국제 방식인 경식 탁구를 도입하면서 한국 선수들의 국제 무대 진출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여기서 경식 탁구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탁구 방식으로, 딱딱한 라켓과 셀룰로이드 공을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최금왕 선수는 10대의 나이로 국내 대회를 휩쓸고 1940년대 일본 대회까지 석권하며 한국 탁구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1970~80년대 황금기와 유승민의 역사적 금메달
제가 탁구를 처음 배우던 초등학생 시절, 김택수, 유남규, 오상은 선수는 이미 전설이었습니다. 여자 선수 중에서는 단연 현정화 선수가 압도적이었죠. 현정화, 류지혜, 김무교 선수 시절이 바로 제가 탁구를 막 배우기 시작했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제 지도교수님이셨던 이에리사 교수님은 1973년 사라예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박미라, 정현숙 선수와 함께 여자 단체전 우승을 차지한 분입니다. 탁구인으로서 지금도 자랑스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그 사라예보 금메달리스트가 제 지도교수님이셨다는 사실입니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은 한국 탁구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5시간 18분의 접전 끝에 중국을 5대 4로 격파하며 세계 탁구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를 만들어냈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유남규 선수는 단체전에서 부진했지만, 개인전에서 세계 랭킹 1위 장자량을 극적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습니다. 마지막 5게임에서 14대 19로 지고 있던 상황을 역전시킨 그 집중력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습니다.
하지만 제가 운동을 시작하고 가장 탁구가 핫했던 시절은 역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입니다. 유승민 선수가 중국의 왕하오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땄을 때, 온 나라가 들썩였습니다. 당시 유승민 선수의 왕하오 상대 전적은 성인 이후 6전 6패로 절대 열세였습니다. 여기서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 대비 성과)로 따지면 김택수 코치의 헌신은 측정 불가능한 가치였습니다. 김택수 코치는 국가대표 선발전 1위였음에도 후배를 위해 선수가 아닌 코치로 대표팀에 합류했고, 왕하오의 이면 타법을 철저히 분석한 끝에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이면 타법이란 라켓의 뒷면을 이용해 공격하는 기술로, 일반 선수들이 대응하기 매우 어려운 고난도 기술입니다. 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두 사람이 포옹하며 흘린 눈물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회자됩니다.
요즘도 신유빈 선수가 활약하고 있지만, 올림픽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건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굉장히 큰 사건입니다. 중국의 탁구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보다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세대교체와 신유빈으로 이어지는 미래
제가 고등학생,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같은 수비 전형인 주세혁 선수가 유명해져서 같은 수비 선수로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세혁 선수는 2003년 파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 최강자 마린을 격파하고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 단식 결승에 올랐습니다. 비록 슐라거 선수에게 아쉽게 패해 은메달에 그쳤지만, 수비형 선수로서 2위라는 쾌거는 세계 탁구 역사에 길이 남을 성적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서효원 선수가 또 수비 전형으로 많이 유명해졌는데, 수비수의 계보가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2010년대 들어 한국 탁구는 중요한 세대교체를 경험했습니다. 이상수, 정영식, 장우진 선수로 이어지는 계보는 한국 탁구의 미래를 밝게 했습니다. 특히 장우진 선수는 2013년 세계 주니어 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을 꺾고 남자 단식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2019년에는 안재현 선수가 20살의 나이로 세계선수권 남자 단식 동메달을 획득하며 김택수 선수의 21살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2024년은 한국 탁구 역사에 큰 의미를 남긴 해였습니다. 부산에서 개최된 세계선수권대회는 한국 최초의 세계선수권 개최로 기록되었으며, 남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파리 올림픽에서는 신유빈, 임종훈 조가 혼합복식 동메달을, 여자 단체전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탁구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신유빈 선수는 어린 시절부터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인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실력으로도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탁구의 역사만 봐도 중국은 정말 탁구의 최강국입니다. 중국의 탁구 인구가 우리나라 인구수보다 많다는 게 그만큼 중국의 인구도 많을 뿐더러 탁구의 인기가 크다는 뜻입니다. 2004년에 유승민 선수가 그 중국을 꺾었다는 건 정말 굉장한 사건이 아닐까요? 앞으로 올림픽 금메달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큰 쾌거였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일본도 너무 잘해서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탁구를 좋아한다면 그냥 탁구만 치는 것이 아니라 탁구의 역사도 조금 관심 있게 알아보는 것이 진정한 탁구 매니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탁구는 1924년 또는 1928년을 기점으로 약 100년의 역사를 써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제강점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1970~80년대 황금기를 거쳐, 2004년 유승민의 역사적 금메달까지 수많은 드라마를 만들어냈습니다. 현재는 신유빈, 안재현, 장우진 등 젊은 선수들이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습니다.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향한 준비가 이미 시작되었고, 한국 탁구는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탁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대한민국 탁구가 세계 무대에서 계속 빛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