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구 수비수 비율은 전체 선수 중 10% 미만입니다. 저도 수비전형인데 처음부터 수비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격 기본기를 익힌 후 코치님 권유로 수비로 전향했는데, 솔직히 처음엔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야 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비를 해보니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실제 경험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수비수 전향 시기와 방법
일반적으로 탁구 수비수는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과 공격 기본기를 갖춘 후 전향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섭니다. 저는 후자의 경험을 했기에 이 방식을 더 추천합니다. 오픈 5~6부 정도의 실력을 갖춘 후 전향하면 포핸드 공격 능력이 이미 있어 현대 탁구에서 필수인 공격적 수비가 가능합니다.
수비수로 전향하려면 먼저 자신의 성향을 파악해야 합니다. 연습량을 많이 확보할 수 있고, 혼자서도 시뮬레이션이나 이미지 트레이닝을 즐기는 연구자적 기질이 있다면 적합합니다. 제 경험상 수비는 단순 감각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공이 어떤 궤적으로 오고, 어떤 각도로 라켓을 대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수백 번 그려봐야 실전에서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여기서 롱커트(Long Cut)란 탁구대 뒤에서 상대방의 강한 공격을 받아내며 백스핀을 거는 기술을 의미합니다. 이 기술은 드라이브보다 배우기 어렵습니다. 드라이브는 앞뒤 움직임이 적지만, 롱커트는 전후좌우 모든 공간을 커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몸 쪽으로 오는 공을 롱커트로 처리하는 것은 정말 고난도 기술입니다.
수비수 용품 선택 기준
수비 라켓은 다이오드 V1이 입문자에게 가장 많이 추천되는 레퍼런스 모델입니다. 강한 공을 받았을 때 라켓이 덜 튕겨줘서 안정적으로 공을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격력이 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요즘은 코지(Koji) 시리즈를 사용하는 분들이 훨씬 많아졌는데, 저도 코지 마츠시타 스페셜을 사용합니다. 가격은 약 10만 원대로 일반 공격 라켓(15~20만 원)보다 저렴합니다.
백면 러버는 롱핌플을 사용하는데, 제가 쓰는 이리우스 S 1.3mm는 컬피원보다 스펀지가 얇습니다. 여기서 롱핌플(Long Pimple)이란 돌기가 긴 특수 러버로, 상대방의 회전을 그대로 돌려주는 특성이 있습니다. 스펀지 두께는 수비 성능에 큰 영향을 줍니다. 1.3mm는 회전량이 많은 공을 받아도 덜 튕겨 나가서 오버 실수가 줄어듭니다. 컬피원의 1.5mm를 쓸 때는 강한 드라이브를 받으면 스펀지가 공을 튕겨내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리우스 S로 바꾸고 나서는 그런 문제가 확실히 줄었습니다.
앞면 러버 선택도 중요합니다. 저는 처음에 광세븐, 공구시 같은 약점착 러버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MX-K 47.5도를 사용합니다. 약점착 러버는 서브에서 회전량이 많이 들어가고 롱커트 시 안정적이지만, 3구 공격이나 카운터 때 공이 잘 안 나갑니다. 제 플레이 스타일이 공격적 성향이다 보니 텐션 러버가 더 맞았습니다. 물론 롱커트 위주로 플레이하신다면 약점착이나 중국 러버가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수비수 필수 기술과 연습법
수비수가 반드시 익혀야 할 기술은 백 롱 푸시입니다. 상대가 백 쪽으로 민서브를 넣었을 때, 이것을 롱으로 상대 포핸드 직선으로 뿌려주는 기술입니다. 일반적으로 수비수는 뒤에서 깎을 거라고 예상하는데, 갑자기 직선으로 빠른 공이 날아오면 박자가 완전히 꼬입니다. 저도 공격수 시절에는 이 기술에 정말 많이 당했습니다.
이 기술이 효과적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공이 가서 상대가 멈칫합니다. 둘째, 박자가 달라 타이밍을 잡기 어렵습니다. 셋째, 깔끔한 상회전이 아니라 어중간한 구질이라 잘못 갖다 대면 네트에 걸립니다. 제가 공격수 시절 백 드라이브를 두껍게 치는 연습을 많이 했었는데, 그때 쌓은 감각이 지금 이 기술에 큰 도움이 됩니다.
롱커트 연습은 실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집에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자주 합니다. 공이 어떤 궤적으로 오고, 제 라켓이 어떤 각도로 움직여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수백 번 시뮬레이션합니다. 처음에는 '공을 다시 돌려보낸다'는 개념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반복하니 실전에서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합니다.
하이부수(초급자)를 상대할 때는 체력 안배가 중요합니다. 롱을 태우다가 한 번씩 밀어주면 공이 풀려서 떠오릅니다. 그때 마무리 공격으로 빠르게 끝내야 뒤로 달려가는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비수는 많이 뛰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변화를 적절히 주면서 체력을 효율적으로 쓰는 게 더 중요합니다.
수비수의 현실적 장단점
수비수의 가장 큰 단점은 체력 소모와 환경 의존도입니다. 동호인 레벨에서는 선수만큼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데, 앞뒤좌우를 모두 커버해야 하니 컨디션이 조금만 안 좋아도 경기력이 확 떨어집니다. 특히 서울 리그전처럼 여러 탁구장을 돌아다니면서 경기할 때, 뒤 공간이 좁은 곳에서는 정말 답답합니다. 뒤에서 열심히 깎았는데 공간이 없어서 앞으로 다시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체력이 금방 바닥납니다.
여기서 VIX(변동성 지수)처럼... 아니, 탁구에서는 '환경 변수'라는 개념이 중요합니다. 쉽게 말해 탁구대 주변 공간, 조명, 바닥 재질 같은 것들이 수비수에게는 공격수보다 훨씬 큰 영향을 줍니다. 같은 실력이어도 환경이 바뀌면 성적이 확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면 장점도 분명합니다. 우선 용품비가 저렴합니다. 라켓은 10만 원대, 백 러버는 3만 원 초반이고 교체 주기도 깁니다. 롱핌플은 민러버보다 오래 쓸 수 있는데, 돌기 밑동이 힘을 받아 갈라지기 전까지는 사용 가능합니다. 손으로 넘겨봤을 때 부드럽게 넘어가면 아직 괜찮고, 뻣뻣하게 버티면 새 러버입니다.
무엇보다 수비만의 독특한 재미가 있습니다. 상대의 강한 공격을 디펜스해서 백스핀을 먹여 미스를 유도하거나, 의도적으로 풀어서 오버 미스를 내게 만들 때의 쾌감은 공격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2년간 수비를 하면서 서울시 대회와 마포구 대회에서 입상도 했는데, 운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수비로 전향하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 성취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비수는 절대 성격이 급하면 안 됩니다. 끈질기게 랠리를 이어가며 상대의 실수를 유도하는 게 핵심인데, 득점이 안 나온다고 조급해하면 오히려 제가 먼저 무너집니다. 요즘 수비는 공격까지 적절히 섞는 하이브리드 스타일이 대세지만, 기본은 여전히 인내심입니다.
수비수 전향을 고민 중이라면 먼저 자신의 체력과 성향을 냉정하게 평가해보시기 바랍니다. 연습량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고, 기술 하나하나를 연구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수비는 분명 매력적인 선택입니다. 다만 빠른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2년 정도의 긴 호흡으로 접근하는 게 현실적입니다. 수비수 코치가 있는 탁구장을 찾는 것도 중요한데, 혼자서는 롱커트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공격 기본기를 갖춘 후 전향한다면, 현대 탁구에서 요구하는 공격적 수비를 더 빠르게 익힐 수 있을 것입니다.